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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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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신분석심리상담센터
작성일17-03-20 00:00 조회1,9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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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임상정신분석연구소 ICP 학술대회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

 

서상봉, NCPsyA (ICP 교수, 이사장)

 

 

들어가는 말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공동체의 중요성과 함께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염려와 관계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자신만이 중요한 Narcissistic Society(자기애적 사회)로 변화해가면서 함께 산다는 의미는 점차적으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격적 관계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타인은 나의 필요에 따라 이용할 대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회의 모든 구조와 관계가 나의 이익에 부합하는가가 기준이 되어버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져야 하며, 완벽하고 전능전지한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면 무시하거나 파괴해버리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속에 함께 사는 삶의 의미과 관계의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서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함께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우선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와 자기애적 병리(Narcissistic neurosis)에 대한 구별을 짓고, 그 후에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병리적 나르시시즘의 특성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살펴볼 것이며,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부재하는 죄책감과 함께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자리한 수치심에 대한 논의로 마루지 짓고자 합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적 병리(Narcissistic neurosis)

 

자기애적 병리(Narcissistic neurosis)는 프로이드가 사용한 신경증(Neurosis)과 분명히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프로이드가 나르시시즘을 발견한 이후에 리비도가 대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되는 나르시즘의 특성 때문에 전이(대상전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짓고 Narcissistic neurosis를 치료는 불가능하며 이러한 환자를 분석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분석가의 오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드 이후 정신분석가들은, 특히 멜라니 클라인은 임상적 상황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정신분석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이론적 기초를 놓기 시작합니다. 여러 분석가들의 이론적 확장에 수용하며 Modern Psychoanalysis의 창시자인 Hyman SpotnitzNarcissistic neurosis의 치료에 대한 기법을 제공합니다.

 

Spotnitz에 의하면, Narcissistic neurosis는 프로이드가 말하는 것처럼 Narcissism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애적 병리는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이 형성되기 이전, 즉 자신과 대상이 분리되어 고유한 인격을 지닌 독립적이라는 것을 확립하지 못한 시기의 특성을 보여주는 병리입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전언어 시기(Pre-verbal period), 전외디푸스 시기(Pre-oedipal period), 혹은 개별 분리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라고 부릅니다. 이시기에 기반을 둔 병리는 심각하고 자기애에 매달려 있기에 특수한 기법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병리의 치료 기법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애적 병리는 공격성이 외부로 건전하게 표현하는 채널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자신을 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크게 보아서 정신분열증, 편집증, 그리고 심각한 우울증(Major depression)이 여기에 속합니다. Phyllis Meadow는 공격성이 어떻게 한 개인 안에서 작용하는가에 따라 진단을 내린 것입니다. 정신분열증은 공격성이 자아를 공격하여 자아가 분열되어 버린 것이며, 편집증은 공격성을 외부에 투사한 결과이며, 심각한 우울증은 공격성이 초자아에게 투자되어 자아를 공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자기애적 병리의 치료에 있어서 핵심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죽음의 본능의 파생물인 공격성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위에서 언급한 자기애적 병리를 지니고 있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신경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해나가지만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전능감을 믿고 거대자아를 지니고 있어서 친밀하고 가까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신경증입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자세한 태도의 내적 역동성에 대한 논의를 하기 전에 우선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구별을 지어보아야 할 것같습니다.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

 

자기애적 성격장애도 정도의 차이에 따라 주변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의 구별이 선명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한계성은 있지만 구별을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나르시시즘을 다 나쁜 것으로 다루게 될 때 우리의 자존감이라는 부분을 제대도 수용할 수 없는 한계성이 다가오고, 성취감이라는 것이 자신을 풍요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 속에 갇혀 외부의 현실 세계와 대상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현실을 살아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일차적 나르시시즘의 이론을 따라가든 아니면 탄생과 함께 대상을 추구한다는 대상관계 이론을 따라가든 우리는 외부의 대상과 관계 맺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즉 자신을 향한 리비도를 대상을 향하도록 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완전히 철수한 상태는 온전한 자폐의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리비도가 대상을 향하게 된다면 대상에 의존하는 존재가 되어 대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온전히 의존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상을 향한 리비도와 자신을 향한 리비도의 투자의 균형 문제로 나르시시즘을 보아야 할 것이며, 이 투자의 균형 정도에 따라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을 구별지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아제는 나르시시즘의 발달이라는 부분을 살펴보면서 병리적 나르시시즘의 고착 과정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병리의 원인들은 크게는 유전적 요소, 타고난 개인의 기질적 요소, 그리고 발달과정에서의 환경적 요소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결정되지만 정신분석은 발달과정에서 환경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만 다룰 수 있는 한계점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나르시시즘의 형성을 발달의 과정에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발달과정에서의 과도한 좌절과 만족은 병리를 유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나르시시즘에서도 이 두 축은 있게 마련입니다. 부모가 유아의 욕구를 과도하게 만족시켜주게 될 때, 이 유아는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창조하였고 자신의 필요를 자신이 자아낸다는 illusion에 지속적으로 사로잡히게 되고 전능감과 거대자아를 지속시켜나가게 될 것입니다. 오직 자신만이 원천인 나르시시즘의 심연 속에 둥지를 틀 것입니다. Donald Winnicott의 주장처럼 유아의 어머니는 완벽한 어머니가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일 때, 필연적으로 유아의 필요에 응답하는데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러한 실패는 유아로 하여금 illusion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알아듣게 해주게 됩니다. 어머니는 유아의 illusion이 잘못된 것이라고 도전하지 않고 품어주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만일 유아의 필요에 응답하는데 있어서 반복적으로 실패하게 될 때, 현실에 때 이른 적응을 하여 조숙한 아이로 성장하며 거짓자아를 발달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위니컷의 입장입니다. Otto Kernberg의 경우에는 반복적인 부모의 실패는 외부 대상에 의존하지 못하고 자신의 유아적 전능감과 거대자아에 의존하게 하여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발달시킨다고 주장합니다. Heinz Kohut은 대상리비도와 자아리비도가 서로 반비례한다는 전통적인 입장에 반박을 합니다. 대상리비도가 증가하면 자아리비도가 감소하고, 대상리비도가 감소하면 자아리비도가 증가한다는 전통적 입장에 반하여 대상리비도와 자아리비도가 각각의 독립적인 발달 과정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의하면, 유아가 부모로부터 narcissistic mirroring(자기애적 반영)을 충분히 받게 될 때 자기애적 리비도가 정상적인 발달과정 속으로 흡수되지만, 자기애적 반영이 충분하지 못할 때 자기애적 리비도는 분리되어 자신의 고유한 세계로 남아있게 되고 퇴행이 벌어지게 될 때 유아기적인 자기애적 구조들을 사용하게 되는 정신의 조직구조를 지니게 됩니다. 이것이 코헛이 보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구조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인간은 자기애적 정신구조의 층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자기애적 반영이 있고, 그럭저럭 괜찮은 어머니의 응답과 응답의 실패 속에서 인내롭게 품어주는 어머니의 태도 속에서 나르시시즘은 정상적인 발달 속에 흡수되지만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자존감을 형성하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외부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또한 외부에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가능하게 해주는 자존감은 나르시시즘의 한부분이지만 이것은 건강한 나르시시즘입니다. 그 이유는 관계의 회피나 철수를 가져다주지 않고 외부 대상에 대한 추구와 적절한 거리를 조정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병리적인 나르시시즘에 들어가게 될 때는 자신의 전능감과 거대자아에 의존하기에 진정한 대상관계에 대한 추구가 없으며, 외부대상은 이용할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자기애적 연장으로 이해될 때만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외부대상의 고유한 인격과 독립적인 개별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됩니다.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심도 있고 또한 분명한 구별은 짓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의 이해가 생겼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병리적 자기애의 원인에 관해서도 간접적인 언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병리적 자기애의 특성들이 어떤 것들인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병리적 자기애의 특성

 

병리적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지금부터는 자기애적 성격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겠습니다. DSM IV-TR은 여러 맥락 안에서 성인 초기와 현재 시작하여 공감의 부족과 칭찬에 대한 욕구와 환상이나 행동에서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거대감의 형태를 지닌 자기애적 성격 장애는 아래의 다섯 가지나 더 이상의 특징을 보여주는 경우라고 말하고 있다 (p. 717):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거대감을 지님 (: 성취와 재능을 과장하거나 부합한 성과 없이도 윗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기대함)

2. 엄청난 성공이나 권력이나 똑똑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

3.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하며 특별한 사람이나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조직에 의해 이해될 수 있거나 연계되어야 한다고 믿음

4. 과도한 칭찬을 요구함

5. 자신의 기대감에 자동적으로 순응하거나 좋은 치료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대감과 같은 당연감을 지니고 있음

6.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처럼 대인관계가 착취적임

7. 공감력의 결핍으로 타인의 감정과 필요를 인정하거나 알아듣기를 꺼려함

8. 타인에 대하여 자주 시기하거나 타인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믿음

9. 오만하고 거만한 행동이나 태도를 보여줌

 

모든 분석가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이러한 특성들을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들은 보여주고 있다. Kernberg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주 특성을 타인과 정서적으로 연결짓는 것이 결핍되어 있고, 자신의 활동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정이 결여되어 있고, 초라한 자신의 자존감을 보강하기 위한 칭찬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자기애적 성격자의 표면 배후에는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엄청난 파괴적 분노와 시기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 자기애적 성격자의 내적 파편화는 분석 중에 예상치 않는 분열 소통을 자아낼 수도 있습니다. 분리(splitting),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부인(denial)이라는 원시적 방어기제가 널리 사용됩니다.

Kohut은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열정과 기쁨의 결여, 지겨움과 죽었다는 느낌, 빈번한 도착적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에 의하면, 자기애적 성격 장애는 전이를 기반으로 해서 최종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코헛은 자기애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은 자아구조를 잘 형성한 사람들이지만 스트레스 상황에서 파편화될 수 있는 자아구조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면서, 분석 중에 이들은 거울이나 이상화라는 자아-대상(self-object) 전이를 형성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의 특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제한된 시간이라 자기애적 성격장애가 경계선 성격장애와 반사회적 성격과 우울증과 또한 히스테리와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해야 할 것같습니다. 우리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와 연관된 자존감, 죄책감, 그리고 수치심이라는 것을 잠시 논의하고자 합니다. 현 시기의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다 명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존감, 죄책감, 수치심, 그리고 나르시시즘

 

자아에 대한 적절감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아이에게 제공되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체감각에 있어서의 쾌감을 포함하여 심리적 편안함이 최대한 제공되어져 하며, 완벽함이라는 거대적 전능 환상이 시기에 적절하게 주어졌다 사라져야 할 것이며, 이상화된 부모와의 동일시가 이루어져야 하며, 아이의 신체와 놀이와 성취에 대하여 인정받는 경험을 해야하며, 어머니는 아이의 좋지 않음에 대하여 인내하고 통제해야 하며, 시기에 맞게 자율적이 되도록 격려해야하며, 어머니는 공감적으로 응답해야만 합니다. 욕구만족의 실패로 인하여 어머니와 유아 사이의 상호관계에서 좌절과 분노는 종종 일어나지만 그로인해 전능환상이 방해를 받는 것은 정상적인 성숙과정의 한부분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제대로 제공되어지지 않을 때 자아조직에 문제가 발생하여 대상관계의 문제, 정서적 능력의 상실, 정신 구조의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안정적이지 않은 자존감 등이 드러나며 기능에도 방해를 받습니다. 여러 특성들 중 자기애적 성격과 관련하여 자존감과 죄책감과 수치심을 다루고자 합니다.

자존감은 자아에 투자하는 리비도와 밀접히 연관이 됩니다. 자아에 리비도가 투자될 때 거대자아와 전능감을 지니게 됩니다. 이 전능환상을 위니컷이 말하는 것처럼 부모가 도전하지 않고 받아주며 인내롭게 기다리거나 코헛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애적 반영을 받게 될 때 자기의 전능감을 충분히 누립니다. 위니컷에 의하면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실패로 인하여 유아는 현실대상을 발견하게 되며, 코헛에 의하면 충분히 누린 전능감이 정상적인 발달과정 속으로 통합되어 들어갑니다. 이 때 대상에 대한 리비도를 투자하지만 대상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지 않고 자아에 대한 리비도의 투자도 이루어지면서 대상사랑과 자아사랑이 동시에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대상에 의존하지만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며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아조직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자존감의 기반입니다. 자존감은 안아주는 환경과 자기애적 반영 속에서 유아적 전능감을 충분히 누린 후에 자아의 발달과 외부대상의 발견과 함께 그것을 포기하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애적 성격 소유자는 유아적 전능환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것에 의존합니다. 외부의 대상이 전능환상을 지닌 자신을 품어주고 반영받는 경험의 결여로 인하여 전능환상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에 생존을 위해서 전능환상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들에게 있어서 병리의 심각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심각할수록 죄책감이 결여되어 있어 때로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전능환상과 거대자아의 개념 때문에, 타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에 수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자족하고 있기에 타인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으며, 타인과의 관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단지 관계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그 사람으로부터 경탄과 칭찬을 얻기 위해 그 사람을 이용하는 경우이거나 유명한 사람과 동일시하며 그 사람을 자신의 연장선으로 볼 때일 뿐입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들에게 있어서 전능감은 늘 표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의 결여나 부재도 이들이 지니고 있는 전능감이나 전능환상과 연결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죄책감이란 자신의 잘못된 행위나 태도에 대하여 한 개인이 느끼는 윤리적인 정서입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에게 있어서 윤리적으로 그릇된 자신의 행위를 수용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전능감과 전능환상에 엄청난 손상을 줄뿐만 아니라 전능환상에 기반을 둔 자아조직의 파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들에게서 죄책감의 결여나 부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 위해서 벌어진 사건에 대하여 부정하거나 (주로 거짓말을 통해서) 타인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수치심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책감은 잘못이나 죄에 대한 개념의 내재화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하고 그 책임이 처벌입니다. 최악의 경우에 있어서 극도의 죄책감을 느껴 더 이상 참아낼 수 없는 경우에 그 사람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수치심은 죄책감과 달리 자신의 잘못이나 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행동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조건입니다. 예를 들어, 불구자로 태어나거나, 불구의 부모를 두었거나, 극심한 가난한 가족 속에 태어나 가족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모두가 빈곤 속에 산다든가, 서자로 태어났다든가, 소수자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든가 등등. 이러한 것이 드러나게 될 때, 나의 윤리적 실패와 죄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책임이라는 면에 있어서,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에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습니다. 이 외부는 부모일 수 있고, 가족일 수 있고, 사회일 수 있고, 국가일 수 있고, 민족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전능성 때문에 죄책감을 용납할 수 없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은 죄책감 대신에 수치심을 느낍니다. 완벽하지 않게 주어진 조건을 용납할 수 없고, 그러한 조건을 제공한 외부대상에 대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보복하고자 합니다. 이 보복이 극단으로 나아갈 때는 자살이 아니라 대학살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지으면서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들이 지니고 있는 정신역동의 구조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정신역동의 구조에 대한 이해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의 치료에 있어서 어떠한 접근을 해야 하는가라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자들의 정신역동성

 

우리는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이 지닌 두 개의 축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나는 표면에 드러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면에 드러난 것이 방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표면에 드러난 것은 병리적 자기애의 특성에 기술하였지만 다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하나의 축을 이룹니다.

1. 전능감(omnipotence)과 거대자아(grandiosity)와 극단적인 자기중심 (self-centeredness)을 기저 구조로 구축하고 있음

2. 지속적이며 친밀한 대상관계 형성이 어려움. 대상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칭찬과 경탄을 자아내도록 착취할 수 있는 대상. 대상에 대한 이상화가 있을 때는 그 이상화된 자신을 동일시하며, 그 대상이 이용도가 없거나 결함을 발견할 때 즉각적으로 평가절하하여 버림.

3. 슬픔이나 그리움이라는 진정한 감정이 결여되어 있어 우울적인 반응을 경험할 수 없으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음

4. 방어기재로 splitting, denial, projective identification, omnopotence, primitive idealization을 주로 사용함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이 표면에 보여주는 이것들이 하나의 축이라면 이것은 무언가를 방어하기 마련인데 방어하고자 하는 내용은 정반대이며 강도도 반비례하기 마련입니다. 이들이 방어하고자 하는 것이 또다른 하나의 축입니다. 이들이 방어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들입니다.

1. 무능력과 무가치함과 열등감과 불안정감

2. 대상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감

3. 대상 상실이라는 우울과 자기 존재의 해체에 대한 두려움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은 이 두 개의 축을 지니고 있지만 표면에 드러나는 것은 전자이지만 이 후자가 표면에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어기재입니다. 따라서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의 치료에 있어서 이 후자의 부분들이 깊게 다루어져야만 치료가 가능합니다. 또한 치료에 있어서 이상적 대상과 자아 그리고 현실적 대상과 자아 사이의 경계선이 붕괴되어 있어 이상자아를 현실자아로 착각하고 있기에 이 부분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의 치료

 

제한된 시간이라 오늘은 제대로 논의 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에 대한 치료기법은 학파와 이론가에 따라 제각기 다르기에 아마 다른 어느 시점에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보이기에 나가는 말을 대신하여 몇 기법을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이글을 마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

Kohut은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적절한 정신 구조 발달의 실패로 보았습니다. 그것은 결핍환경의 반복이었기에 공감적인 경청과 함께 자기애적 반영을 통해서 self-object로 존재하며 그것은 환자가 내재화하도록 도와주는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유아의 필요에 대하여 적절한 공감적 응답을 제공해주지 못한 어머니의 실패가 병리를 유발하였기에 분석 속에서 새로운 대상으로서 분석가는 어머니가 실패한 공감적 응답을 제공하며, 초기에는 해석을 가능한 피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공감을 강조합니다.

Kernberg는 치료에 있어서 해석전의 특별한 단계가 필요하다는 코헛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컨버그에 의하면, 거대자아가 정기적으로 이상적 자아와 대상의 원시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초자아의 형성에 결함이 생기며 내재화된 대상관계의 세계가 퇴화하여 대인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에게 생깁니다. 치료의 과업은 기존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배열을 할 수 있도록 환자를 도와주는 것이며 병리적인 형태의 이상화 과정을 해체시키는 것입니다. 이상화 배후에 있는 격노와 공허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 Kernberg의 입장입니다.

SpotnitzModern psychoanalytic technic은 자기애적 병리뿐만 아니라 자기애적 성격 장애치료에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의 자기애적 전이(자아와 대상의 구분이 벌어지지 않는 시기에 일어나는 현상의 전이로 자폐-공생-쌍둥이 전이-대상의 구별이라는 단계로 성장함)의 형성과 해소라는 긴 과정을 통해서 성숙을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자기애적 전이의 과정 속에서 부모의 손에서 손상을 입었던 부분을 새로운 분석가/어머니와의 정서적 소통을 통하여 정서적 성숙과 치료가 벌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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